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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서울]한일 국교 55년➷"역사를 잃어버린 나라에겐 미래가 없다"

기사승인 2020.06.23  17: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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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원섭 언론인> <프로필> <1960년6월13일 (만58세), 경기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데일리메일 편집인, 편집국장 / 대국엔터테인먼트 대표 / 고려대학교 교우회 이사 / 경력=1997~1999 미디어오늘 편집장 / 1989~1997 국제신문 차장 / 2006~2009 CNB뉴스 편집인, 편집국장

[데일리서울=김원섭 칼럼]"수교 협상에서 비록 작은 것이지만 화나게 하는 문제(irritating problems) 가운데 하나가 독도문제다...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도를 폭파시켜 없애버리고 싶다고 말했다(President Park said he would like to bomb the island out of existence to resolve the problem)"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는 국무부 기밀대화 비망록,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6월 한일협정 타결 직전 미국을 방문해 독도 폭파 발언을 했다고 적혀 있다.

미국 국무부 비밀문서로 분류된 1962년 10월29일 김종필-러스크 대화록에는 오히려 "김종필이 오히라에게 독도를 폭파해 버리자고 제안했다고 말하자 러스크는 자신도 그 해결책을 생각해냈다고 대꾸했다"고 돼 있다.

22일 한일 국교 정상화 55주년을 맞았다. 만일 55년 전 독도를 폭파해버렸다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울릉도와 독도가 신라에 복속된 근원을 제시한 최초의 역사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신라의 이사부가 지하에서 怒하셨을 것이다.

55년 전인 1965년 6월 22일 이동원 당시 한국 외무부 장관과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당시 일본 외무상은 도쿄에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한일 기본조약)과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한일 청구권 협정)을 비롯한 4개의 부속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단절된 양국의 국교를 회복하는 분기점이 됐으나 징용 판결 갈등을 비롯해 한일 관계가 악화하는 불씨로 남았다.

수교 협상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식민지 지배의 성격에 관해 이견을 정리하지 못했으며 최근에는 청구권의 범위를 두고 충돌하고 있다. 한일 기본조약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에 관해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라고 규정했다.

또 한일 청구권 협정은 한일 양국과 국민 사이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기술했다.

이는 단절된 양국의 국교를 회복하는 분기점이 됐으나 징용 판결 갈등을 비롯해 한일 관계가 악화하는 불씨로 남았다.

수교 협상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식민지 지배의 성격에 관해 이견을 정리하지 못했으며 최근에는 청구권의 범위를 두고 충돌하고 있다.

한일 기본조약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에 관해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라고 규정했다.

또 한일 청구권 협정은 한일 양국과 국민 사이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기술했다.

징용 판결을 둘러싼 갈등의 이면에는 이들 협정이 있다.

우선 식민지 지배에 관해 '이미 무효'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 한국 측은 이 조항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처음부터 불법이라는 의미로 풀이했다.

한국 대법원은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일본 정부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불법적"이라고 판시(2018년 10월 30일)해 이런 인식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일본 측은 식민지 지배가 당시에는 양국의 조약에 의해 이뤄진 합법적인 것이었고 나중에 무효가 됐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청구권 협정은 징용 판결 갈등과 직접 관련돼 있다.

대법원은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측으로부터 당한 불법 행위나 인권 침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반면 일본은 청구권 협정으로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는데 배상하라고 명령한 것은 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징용 피해자의 청구권도 협정에 포함됐다고 전제한 셈이다.

협정의 적용 범위를 판단할 권한을 지닌 대법원이 청구권 협정에 징용 피해자의 위자료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으므로 삼권 분립에 따라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일관되게 밝힌 입장이다.

일본 정부는 판결 자체가 국제법의 일종인 청구권 협정 위반이라며 맞서고 있다.

최근 한국 법원은 대법원판결에 근거해 압류한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강제 매각에 필요한 절차를 재개했다.

일본 정부는 강제 매각이 이뤄질 경우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악화한 양국 관계는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일제 강점기 징용 현장을 놓고 역사 갈등에도 다시 불이 붙었다.

일본 정부는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를 비롯한 징용 시설에서 한반도 출신 징용 피해자들이 강제 노역으로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도쿄에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징용 피해를 제대로 보여주기는커녕 군함도에서 인권 침해나 차별이 없었다는 이미지를 부각하는 전시를 하고 있어 논란을 키웠다.

한국 정부는 일본 근대산업시설 23곳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 취소를 요구하는 내용의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명의 서한을 이달 안으로 발송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에 맞선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가 진행 중이라서 경제 분야에서도 양국의 갈등은 이어질 전망이다.

아울러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한이 올해 8월이라서 갈등이 다시 안보 협력 분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일본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이고 경제적, 안보적으로도 기밀히 협력해야 할 중요한 우방임에 틀림없다. 일본은 우리에게 마음 편한 친구는 아니지만, 아사 갈수도 없는 이웃이다.

일본의 과거사 사과는 한.일화해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충분조건은 일본 사회 저변의 변화다. 위안부와 역사인식은 일본사회의 변화와 함께 가야할 장기과제다.

역사를 잃어버린 나라에겐 미래가 없다. 일본은 “과거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외눈박이가 되지만, 과거역사에 집착하는 자는 두 눈을 다잃는다”는 러시아 속담을 귀담아 듣고 과거사를 해결해야 한다

글/ 김원섭 언론인> <프로필> <1960년6월13일 (만58세), 경기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데일리메일 편집인, 편집국장 / 대국엔터테인먼트 대표 / 고려대학교 교우회 이사 / 경력=1997~1999 미디어오늘 편집장 / 1989~1997 국제신문 차장 / 2006~2009 CNB뉴스 편집인, 편집국장.

김원섭 칼럼 webmaster@dail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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