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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노조,그대 공공의 적”➘‘촛불청구서’겁박말고 미생 ‘장그래’로 ‘나눔의 노동학’을!

기사승인 2019.05.01  18: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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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원섭 언론인><프로필> <1960년6월13일 (만58세), 경기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데일리메일 편집인, 편집국장 / 대국엔터테인먼트 대표 / 고려대학교 교우회 이사 / 경력=1997~1999 미디어오늘 편집장 / 1989~1997 국제신문 차장 / 2006~2009 CNB뉴스 편집인, 편집국장>

[데일리서울 김원섭 칼럼]“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는 8만 명의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미시건 거리에서 파업집회를 가졌다. 이들이 집회를 가진 이유는 노동력 착취에 대항하여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해서였고, 노동자들의 파업이 얼마나 영향력이 강한지 깨달은 자본가들은 이들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었다.”

이 사건이 '노동절'의 효시다. 우리나라는 지난1958년 이후 대한노동조합총연맹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했으며, 1963년 4월 17일에는 '근로자의 날'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94년 다시 5월 1일로 바뀌었다.

노동은 창조적 행위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을 함으로써 노동의 대상에다 인간의 생각이나 의지, 나아가 사상을 구체화시켜 무언가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노동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기쁨을 때때로 느낀다. 이것은 결국 우리들 각자의 존재의의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 지금 노조활동은 노동자를 위한 노조활동이 아니라 일부 계층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조로 변색되어 가고 있다. 여기에 정치성향까지 가미하는 노동운동을 전개, 정치노조로 탈색하고 있다. 겉은 노조지만 속은 富가 가득찬 양의 털을 쓴 늑대 같은 ‘귀족노조’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그러면서 일부 노조는 자녀들을 특별 채용하는 ‘직장 세습화’를 만들고 있으니 이게 북한의 노동당과 다를바 없지 않은가? ‘현대판 음서제’등 이런 행위를 하는 ‘민주노총’은 ‘민주’자를 빼어야 마땅하다. 여기에 촛불청구서로 문재인정부를 겁박하고 있다.

기득권을 놓지않는 그들은 호의호식하겠지만 자신들은 파티가 끝난뒤 빚잔치할 일이 두려울 뿐이다. 취업은 안되고, 사회는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나라는 빚에 허덕인다면 청년들이 선택할 길은 뻔하다. 암울한 미래뿐인 조국을 등지고 떠나는 일이다.

눈앞의 기름진 음식만 즐긴 뚱뚱해진 고양이 같은 행위에 대해 노동자와 국민들이 등을 돌리는 것이다. 귀족노조의 ‘제 밥그릇 챙기기 획책’은 전 국민적 분노만 살 뿐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이에 환멸을 느끼고 노조를 탈퇴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지금까지의 노동운동방식에서 탈피하지 않을 경우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없을 것이 뻔하다.

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 같은 행위를 접고 노조원의 실용적 이익을 위하는 새로운 노동운동의 지평을 열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단일 세력의 노동운동이 아닌 각 세력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시대 흐름에 맞는 노동운동이 등장하고 있는 때에 노동운동의 청렴성을 확보하고 노동자를 섬기면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노동운동을 지향할 때만 노동단체는 살아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해야 임금 안정을 기하고 산업구조조정을 원활히 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양대 노총은 깨달아야 한다.

고용시장에서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져 오늘날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유목민이 되어가듯이 ‘난민수용소’에서 미래사회의 모습을 본다. 난민수용소는 유동적 현대의 삶의 패턴이 시험되고 예행되는 실습장이다.

증오상업주의가 당파싸움을 낳고 정치 환멸을 재생산한다. 따라서 빈곤이 고착화되면 사회통합은 불가능하다. 빈곤탈출과 계층 상승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면 경제 활력도 급감한다. 성장잠재력도 물론 떨어진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도덕성과 명분으로 사회와 호흡해야 한다. 노동이라는 짐을 분담하고 여가라는 이득을 나눠가짐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최대한도의 복지를 누리는 공동체를 꿈꿔야 한다.

노동계가 근로자들의 행복보다 자신의 입지나 정치적 영향력을 챙기는데 급급하면 노동의 미래는 나아질 수 없다. 노동계는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세계화, 기술혁신, 인구구조의 변화등 노동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요인을 해결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정치활동에 치우치기보다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를 적극 활용해 실질적인 방향을 찾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제 청년 일자리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비정규직인 미생 ‘장그래’가 산다. 자식에게 넘긴 부채 때문에 나라를 망친다는 것을 아버지들은 기억해야 한다.

지난 90년대 중반 우리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 ‘아버지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김정현씨의 소설 ‘아버지’가 노동절을 맞아 다시 재연되고 있다.

‘행복의 특권’을 쓴 긍정심리학자 숀 아처는 “현대사회에서 최대 경쟁력은 행복”이라고 말했다. 행복지수가 높아야 업무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잡으려는 행복, 하지만 많은 이에게 행복은 그림의 떡처럼 보인다.

행복을 추구하는 달이자 가정의 달인 5월, 흔들리는 사회, 직장, 가정에서 잃어져가는 아버지의 지위를 위해 ‘나눔의 노동학’으로 與民同樂의 길을 열때다....<글/ 김원섭 언론인>

<프로필> <1960년6월13일 (만58세), 경기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데일리메일 편집인, 편집국장 / 대국엔터테인먼트 대표 / 고려대학교 교우회 이사 / 경력=1997~1999 미디어오늘 편집장 / 1989~1997 국제신문 차장 / 2006~2009 CNB뉴스 편집인, 편집국장>

<김원섭 칼럼> webmaster@dail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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